중경삼림의 또 다른 버전,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Fallen Angels, 1995)'
이번 리뷰해 드릴 영화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타락천사(墮落天使)'입니다. 중경삼림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영화입니다. 중경삼림이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타락천사는 등장인물들이 조금 중첩되는 장면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진행방식이나 영화의 구성은 중경삼림과 거의 흡사합니다.
'중경삼림'에도 등장하였던 출연진 금성무(카네시로 카테시)가 동명이지만 다른 설정의 '하지무'로 등장합니다. 여명, 양채니, 이가흔, 막문위 등 유명 배우들이 함께 대거 새롭게 캐스팅되어서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대만의 금마장영화제(제32회)에서 미술디자인상과 편집상을 수상하고, 홍콩 금상장영화제(제15회)에서는 촬영상(크리스토퍼 도일), 음악상에 여우조연상(막문위)까지 수상하는 등 다양한 수상경력도 보유한 화제의 작품이었습니다.
감독 및 출연진
감독 왕가위
주연 여명(황지민), 금성무(하지무), 양채니(찰리),
이가흔(파트너), 막문위(베이비)
촬영 크리스토퍼 도일
방황하는 킬러와 파트너
기억상실증에 걸린 킬러 '황지명(여명)'은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과장 파트너(이가흔)' 외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롭고 고독한 인물이다. 일거리를 주고 받으며 프로젝트를 실행해 가는 과정에서 파트너 에이전트는 동업자 관계인 킬러 황지명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황지명은 킬러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사적 관계의 형성은 용납이 되지 않기에, 파트너 에이전트와 접촉하는 것을 철저하게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파트너가 킬러를 사랑하는 감정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녀 혼자서만 하는 일방적인 가슴앓이를 계속 유지하고만 있다.
황지명은 이런 파트너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잘 알지 못하는 '펑키 베이비(막문위)'에게 접근하여 기존의 파트너와의 동업 관계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 이런 과정에서 파트너는 황지명에게 마지막 일을 부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을 떠난 누군가를 죽게 만들려는 것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누가 만드나
어린 시절 다섯 살 즈음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난후 말을 잃어버린 '하지무(금성무)'는 친구도 직업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밤중에 다른 이들의 가게에 몰래 들어가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피해를 주며 장사까지 하려고 한다. 아무 희망 없이 살던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실연을 당한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며 슬퍼하는 그녀 '찰리(양채니)'이다. 하지무는 찰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녀는 끝내 옛 애인을 잊지 못하기에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결국 실연의 상처를 뒤로 한채 하지무는 새로운 직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려 노력하지만 그 역시 과거가 쉽게 치유되지만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황지명을 사랑하던 파트너 에이전트와 하지무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중경삼림의 Night 버전 '타락천사', 감상포인트
영화 '타락천사'는 원래는 '중경삼림'의 두가지 에피소드 뒤에 이어지는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로 구성되어 한 편으로 함께 만들어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영화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기에 또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져 발표되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가 중경삼림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하지만 중경삼림보다는 내용이 좀 더 난해합니다. 그래서 '중경삼림'이라는 영화에 익숙해진 분들이 보시기가 더 수월할 수가 있습니다. 스토리가 이어지지는 않지만 '타락천사'는 '중경삼림'의 새로운 후속 편으로 보시는 것이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당시 홍콩 반환을 앞둔 혼란스러운 상황의 분위기를 '왕자웨이(왕가위)'의 영화에서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는데, '타락천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상황적인 불안과 고뇌를 모호하면서도 몽환적인 왕가위 특유만의 영상미와 화법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래서 약간은 혼란스럽지만 더욱 스타일리시합니다.
중경삼림의 등장인물을 좋아하시고, 재미를 느끼신 분들이라면 분명 상당한 매력과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중경삼림' 쪽이 데이한 느낌이었다면, '타락천사'에서는 나이트 하면서도 감각적인 또 다른 만족감을 느끼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두 영화의 주제가 상반되는 것 같고 결말의 방향도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은 '사랑'이라는 희망을 향해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