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지만 치명적인 왕가위식 멜로영화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
이번 리뷰해 드릴 영화는 왕가위의 멜로영화 '화양연화(2000)'입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뜻하는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왕가위식 러브스토리 영화'의 대명사입니다. 영화의 주된 소재가 불륜인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불륜과 실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한번 더 진지하게 감상해 볼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확실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영화음악과 함께 여전한 감독만의 원색적인 영상 색채가 '화양연화'에서 조금 더 고급스러워졌습니다. 전성기 홍콩영화에 어김없이 빠지지 않던 자욱한 담배연기와 나이스한 핏의 화이트 러닝셔츠도 역시 등장합니다. 그럼 영화 '화영연화'의 매력 속으로 빠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및 출연진
- 감독 왕가위
- 주연 양조위, 장만옥
- 촬영 크리스토퍼 도일
- 음악 Mike Galasso, 우메바야시 시게루
그 & 그녀의 STORY
1962년의 홍콩입니다. 신문사 편집 기자로 일하고 있던 주모운(양조위)의 가정과 무역회사의 비서인 소려진(장만옥)의 가정이 같은 날 이사를 오게 됩니다. 이렇게 두 가구가 같은 날 같은 아파트에서 살게 됩니다. 주모운의 아내는 호텔 근무로 야근이 잦았으며, 소려진의 남편은 일본 출장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자주 집을 비웠기에 주모운과 소려진은 집 근처 국수가게로 가는 길목에서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되어 인사도 하게 됩니다.
날이 갈수록 주모운의 아내는 출장이 길어지고, 소려진의 남편 또한 매일같이 일본 출장이 반복됩니다. 그로인해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던 주모운과 소려진은 어느 날 아내의 핸드백이 소려진의 것과 같고, 남편의 넥타이가 주모운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둘은 동시에 자신의 아내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불륜이 깊어질수록 주모운과 소려진은 서로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깊어집니다. 예전부터 무협소설 쓰는 것이 꿈이었던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자신의 소설 모니터링을 부탁하게 되고, 둘은 오해를 피해 동방호텔 2046호에서 함께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덧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연민을 넘어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함께 살고 있던 집주인이었던 손 부인은 늦게 귀가하는 소려진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경고까지 하게 됩니다.
주모운과 소려진은 소문과 혹시 불륜으로 번질 염려를 피해 서로 연락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한 주모운은 소려진의 회사로 전화도 걸어보지만 회사 상사들에게 의심만 받게 됩니다. 주모운은 결국 자신들이 이미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남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회의를 느끼고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결심을 소려진에게 말하려고 만난 날, 어느새 주모운은 소려진에게 사랑의 마음을 고백까지 하게 되고 두 사람은 골목길에서 이별연습을 합니다. 두 남녀의 이별연습이라는 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퍼서 서로의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주모운이 떠난 후 소려진은 두 사람의 공간 2046호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1963년이 되어서 소려진은 잊지 못한 주모운은 찾아 싱가포르로 향합니다. 주모운은 소려진이 자신을 찾아온것을 눈치채지만 둘은 만나지도 못하고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1966년 홍콩입니다. 주모진을 그리워하던 소려진이 결국 그 아파트를 떠나게 됩니다. 소려진이 떠난뒤 주모운은 홍콩으로 돌아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방문하고 그녀와의 시간이 진정한 화양연화 시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막장 아닌 왕가위식 사랑이야기
왕가위식 아름다운 미장센에 잔잔하지만 치명적인 수를 놓은 듯한 영화입니다. 세월이 지자 재감상하면 새로운 각도로 더 넓게 보여서 더 깊어지는 영화들이 있는데, 화양연화 역시 그렇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랑을 대하는 관점 또한 변해갈수 있기에, 처음 보고 수년이 지나서 다시 감상하신다면 훨씬 더 걸작임을 느끼실 수가 있습니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확힐하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영화음악 OST 또한 일품입니다. 그대로 보여주기보단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왕가위식 화법을 음악이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줍니다. 애잔하면서도 세련된 선율들이 영화가 끝이 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 귓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주모운과 소려진의 이야기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며 가장 아름다웠다고 느끼는 순간은 어쩌면 가장 슬펐던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흠이 난 사랑보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아픈 추억이 훨씬 숭고함을 보여주는 영화 '화양연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