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신드롬의 시작, 무한루프 감상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1994)'
왕가위 감독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적인 영화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1994)'입니다. 1994년 제작되어 국내에는 1995년에 개봉하였습니다. 1994년 대만 금마장 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스톡홀름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1995년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 편집까지 홍콩 금상장 영화제 4개 부문까지 상을 받은 화려한 수상경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2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진 옴니버스식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임청하와 금성무(카네시로 타케시)가 주연으로 등장하고, 2부에서는 양조위와 왕페이(왕정문)가 주연으로 나와 캐릭터 각자의 방식을 보여주는 열연을 해 줍니다.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게 되었음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장기간 상당했던 영화였기에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2021년 국내 영화관 재개봉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제목 '중경삼림(重慶森林)'은 '중경의 울창한 숲'이라는 뜻입니다. 영문 제목 'Chungking Express' 처럼 홍콩의 오래된 건물인 '충킹맨션'과 그 일대의 빌딩 건물들이 영화의 배경이 됩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실연을 겪은 두 명의 경찰 남자들과 그들 주위에 등장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줄거리가 됩니다. 그들만의 '사랑을 잊는 방법', 그리고 '사랑을 찾는 방법'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부 미지의 하룻밤 인연
현란하게 떨리는 카메라 프레임, 쉴 새 없이 시끌벅적 바쁜 사람들, 강한 색채의 홍콩거리를 보여주며 영화 '중경삼림'은 시작합니다. 금발머리와 까만색 선글라스를 끼고 바바리코트 차림을 한 한 여성(임청하)이 비장한 표정으로 길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해갑니다.
그녀가 사라지고 홍콩의 연기 자욱한 밤하늘이 비춰지면서, 경찰 223 하지무(금성무)의 내레이션이 들려옵니다. 하지무가 범인을 잡기 위해 또다시 현란한 프레임 속을 쫓아 뛰어가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유명합니다. 강렬한 색채 속에서 감각적인 카메라 워크와 기법들이 만들어낸 화면이 오묘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선사합니다.
경찰 하지무는 옛 애인 메이에게 실연을 당했습니다. 5월 1일까지 한 달 동안 헤어진 옛 애인을 기다리면서, 유통기한도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사 모으고, 그날까지만 그녀를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금발 머리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성은 마약 밀매상 입니다. 마약 운반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건지 이 여인은 총격전까지 벌이게 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술집으로 향한 그녀를 반긴 것은, 5월 1일이 되어도 옛 연인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해 술집에 처음으로 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경찰 223 하지무였습니다.
취할 정도로 함께 술을 마신 하지무와 그녀. 휴식을 위해 둘은 호텔로 향하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잠이 들어 버립니다. 하지무는 혼자서 영화도 보고 야식도 먹다가, 그녀가 깨어나기 전에 그녀의 구두까지 닦아놓고 호텔을 떠납니다.
새벽 아침 스물다섯이 된 하지무는 실연당할 때마다 혼자 하는 조깅으로 마지막 남은 옛 여인에 대한 미련까지 씻어 내려합니다. 이제는 호출기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 운동장에 호출기를 버려두고 가는 찰나에, 호출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금발머리 그녀에게서 온 생일 축하 메시지입니다. "기억이 통조림에 있다면 유통기한은 없기를 바라고,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겠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하지무는 호출기를 다시 들고 달려갑니다.
2부 우리는 사랑일까
하지무가 단골인 식당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 식당의 점원으로 일하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노래 'California Dreamin'을 즐겨들으며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페이(왕페이)'입니다.
식당을 찾는 또 다른 경찰 663(양조위)이 있습니다. 페이는 경찰 663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중, 663과 결별한 스튜어디스에게 663에게 전해 달라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편지를 몰래 열어보니, 그 속에는 이별의 메시지와 663의 집 열쇠가 들어 있습니다. 페이는 663이 식당을 방문하였을 때, 편지를 건네려고 했지만 663은 나중에 가져가겠다고 말하며 편지를 보관해 달라고 합니다.
장터에서 우연히 663을 만나게 된 페이는, 편지를 우편으로 붙여주기 위해 663의 주소를 알게 됩니다. 이 날 이후 페이는 몰래 663의 집을 혼자 들어가 그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청소도 하고, 때로는 옛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의 흔적도 지워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663은 문득 옛 연인이 집으로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근무시간인 낮이지만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문을 열어보니 집안은 온통 물바다 인 상태입니다. 633이 영문을 몰라 놀라고 있을 때, 금붕어를 사 들고 발랄하게 집으로 오던 페이와 마주치게 됩니다. 페이는 너무 기겁해서 다리에 쥐가 나 버립니다. 633은 그런 페이를 마사지해주며, 잠들어버린 페이와 633은 잠깐이지만 따스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633은 자신의 집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페이를 발견하고 귀가를 합니다. 집을 나서던 페이와 633은 마주치게 되고, 페이는 놀라 문을 잠가버리고 도망을 가 버립니다.
경찰 633은 식당의 페이를 찾아가 캘리포니아 바에서 8시에 보자는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하지만 633이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 페이는 오지 않았고, 식당의 주인이 633에게 편지를 전해 줍니다. 편지의 내용은 페이가 그린 1년 후 캘리포니아행 항공권입니다. 하지만 출발일은 비에 번져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페이는 7시 15분에 캘리포니아 바에 갔었습니다. 하지만 633에게 1년의 시간을 주고 캘리포니아가 궁금해 떠난 것이었습니다. 1년 뒤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으로 돌아온 페이는 캘리포니아 바를 들렀다, 자신이 일하던 사촌 오빠의 식당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예전의 사촌 오빠는 없고, 그곳을 인수한 경찰이었던 633이 가게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페이는 633에게 편지를 읽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633은 비에 번진 비행기표 편지를 꺼내 보여주며 이걸로도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합니다. 페이는 부끄러운듯 다시 새로운 걸로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어디 가고 싶어요?(페이), "아무 곳이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633)"
왕페이가 부른 노래 '몽중인(夢中人)'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다시보기 무한 루프 영화, 중경삼림 감상포인트
중경삼림은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이별과 실연이라는 주제를 밝은 톤과 화법으로 풀어 나갑니다. 영화 전반적인 시퀀스 구성과 편집이 너무 적절하고 세련되어서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아주 다양한 느낌을 줍니다. 대사가 많지는 않지만 모든 씬들이 제작자가 의도한 대로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대화의 표현이 적기에 그래서 몇 번을 다시 보기 해봐도 새로운 요소들을 항상 발견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특정한 시대나 연령층을 위한 느낌도 없어 1990년대 만들어졌지만 언제 누가 보아도 만족할만한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영화 중경삼림을 정의해 보자면 '젊음'과 '설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별과 고독이 찾아왔지만 영화는 너무나 희망찹니다. 그런 설렘과 희망을 느낄수 있다는 것은 항상 젊음이라는 소중한 에너지가 밑바탕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무한 루프 다시 보기 해보아도 셀레고 행복한 로맨스 영화, 소중한 청춘 영화 '중경삼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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